♧ 그림책
작은 배추
구도 나오코 글, 호테하마 다카시 그림 그림/이기웅 옮김/길벗 어린이
언덕 위에 오도카니 선 감나무가 옆에 있는 밭을 보고 말했습니다.
“흠, 올해는 배추를 심었구나.“ 연두 빛 떡잎이 밭이랑을 따라 나란히 돋아나 있었습니다.
여기서 지낸 지도 벌써 여러 해, 웬만한 채소는 모르는 게 없는 나무입니다.
어느 날, 감나무 밑에서 누군가 말했습니다.
“나는 누구일까?”
감나무가 내려다보니, 바람에 날려 왔는지 배추 떡잎 하나가 고개를 갸웃하고 있었습니다.
“배추란다. 꼬마 배추.” 감나무가 말했습니다.
“아 안녕! 그런데 넌 누구야?”
“나는 감나무야.” 배추는 감나무에게 이것저것 배우면서 자랐습니다.
작은 배추는 속잎이 자라나면서 어느덧 동그랗게 알이 찼습니다.
그래도 아직은 작은 배추였지요.
밭에서 자란 배추들은 영차 하고 들어야 할 만큼 무거워 보였습니다.
찬바람이 불어 올 무렵, 트럭이 나타나서 밭에 있는 배추를 실었습니다.
채소 가게로 간다는 것을 감나무가 가르쳐 주었습니다.
작은 배추도 따라가고 싶어서 “저요, 저요!”하고 손을 들었습니다.
하지만 작은 배추를 태워주지 않았습니다.
큰 배추만 데리고 간다는 감나무의 말을 듣고 작은 배추는 얼른 크고 싶어서 체조를 시작했습니다.
하나 둘 셋 넷, 어서어서 크자! 다섯 여섯 일곱 여덟, 채소 가게 가자!
땅이 단단해질 만큼 추위가 오자 밭에 남은 배추들은
서리나 눈이 와도 춥지 않게 지푸라기 머리띠를 묶었습니다.
작은 배추도 작은 머리띠를 묶었습니다.
하나 둘 셋 넷, 머리띠를 했다! 다섯 여섯 일곱 여덟, 트럭을 타자!
트럭이 왔고 밭에 있던 배추들은 모두 트럭에 올라탔습니다.
그런데……, 트럭 아저씨가 작은 배추를 톡톡 토닥였습니다.
“좀 작은가? 그래, 넌 여기서 봄을 기다렸다가 꽃을 피워 나비랑 놀려무나.”
트럭은 부릉부릉 떠나고 다시는 오지 않았습니다.
넓디넓은 언덕 밭에 작은 배추 혼자 남았습니다.
하늘이 크게 펼쳐지고 둘레가 텅 비었습니다.
“봄이 뭐야? 꽃은? 나비는 또 뭐야?” 작은 배추는 울먹울먹 감나무한테 물었습니다.
“봄이 되면 해님이 네 곁에 바싹 다가와. 그러면 포개 있던 꽃잎이 활짝 펼쳐지며 쑥쑥 크지.”
“쑥쑥 큰다고? 나도?”
“그럼, 꼭대기에 노란 꽃도 가득 피지. 햇살 닮은 나비가 왁자지껄 모여든단다. 얼마나 즐거운지 아니?”
작은 배추는 봄을 기다렸다가 꽃을 피우기로 했습니다.
“느긋하게 한숨 자. 봄이 오면 깨워 줄게.”
감나무는 꾸벅꾸벅 조는 작은 배추 곁을 그림자처럼 지켜 주었습니다.
눈이 펑펑 내리는 밤과 얼음장 같은 아침이 지나가고 봄이 왔습니다.
따스한 봄날, 언덕 위 감나무 곁으로 아른아른 아지랑이가 피어올랐습니다.
그 가운데에 작은 배추가 있었습니다.
하얀 나비가 가득 놀러 왔습니다.
노오란 꽃을 만나러.
“안녕, 안녕하세요?” 배추가 웃으면서 감나무에게 가만히 인사했습니다.
작은 배추였을 때를 떠올리며 가만히 속삭였습니다.
하나 둘 셋 넷, 봄이 활짝!
다섯 여섯 일곱 여덟, 꽃이 활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