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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책 가만히 들어주었어
코리 도어팰트 글, 그림/신혜은 옮김/ 북뱅크
가만히 두 손으로 그림책을 들어봅니다.
가로 세로 20센티미터 정도의 정사각형 크기
연베이지 색의 빛나는 겉싸개에서 편안함이 느껴집니다.
겉싸개를 펼치면 겉싸개와 똑같은 사랑스러운 그림이 수줍은 듯 얼굴을 드러냅니다.
‘가만히 들어주었어.’ 고운 하늘빛 글씨가 큼지막하니 표지의 반을 차지합니다.
그 아래 하늘빛 줄무늬 내의 입은 곱슬머리 귀여운 아이와
연분홍 귀 위로 쫑긋 세운 토끼 한 마리 두 눈 감고 꼭 끌어안고 있습니다.
다정한 소년과 토끼의 모습에 저절로 웃음이 납니다.
앞 면지, 빛 고운 하늘에 크고 작은 열 입곱 마리의 하얀 새들 힘찬 날개짓하며
아래로 위로 날아갑니다.
새들의 날개짓을 눈에 담아둡니다.
C.C, J.B, S.A.F. 그리고 다시 시작하는 모든 이를 위하여.
라는 작가의 헌시가 눈에 들어옵니다.
나직이 소리 내어 읽으며 다시 시작하는 모든 이를 위해 마음을 모읍니다.
속표지 ‘가만히 들어주었어’ 제목 아래
귀여운 곱슬머리 아이 제 몸보다 커다란 상자를 밀고 가는 모습으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어느 날. 테일러는 뭔가를 만들기로 했어.
뭔가 새로운 거. 뭔가 특별한 거. 블록을 손에 든 테일러의 눈빛이 반짝입니다.
특별한 것을 만드는 테일러의 집중력이 사랑스럽습니다.
뭔가 놀~라운 거를 완성한 테일러.
뿌듯해하는 테일러의 모습이 멋집니다.
그런데 난데없이 까만 새들이 날아와 모든 게 무너져 버립니다.
보이시나요? 테일러의 크게, 깜짝 놀라는 모습을.
살면서 정성껏 쌓은 나의 소중함이 난데없이 한꺼번에 무너진 경험이 있으신지요?
직장에서, 가정에서, 친구관계에서,
그 때의 절망감을 어떻게 감당하셨는지요?
테일러와 함께 해답을 찾으러 가겠습니다.
모든 게 무너진 테일러의 상황을 처음 알아챈 건 닭이었습니다.
노~란 부리 벌리고 빨간 볏 세우며 달려온 하얀 닭 “꼬꼬댁 꼬꼬꼬 에구머니나! 이를 어째,
어떻게 이런 일이! 말해봐. 말해봐.
어떻게 된 건지 말해 봐! 꼬꼬댁 꼬꼬꼬!”
하지만 테일러는 말하고 싶지 않았고 닭은 빨간 볏 세우고 노란 다리 종종거리며 가버렸습니다.
다음엔 씩씩한 걸음의 갈색 곰이 왔습니다.
“우와, 끔찍해, 정말 화나겠다. 그럴 땐 소리를 질러! 크와아아아아앙!”
흰 이빨 드러내며 소리 지르는 곰을 바라보는 테일러.
하지만 테일러는 소리 지르고 싶지 않았고 갈색 털 곤두세우던 곰도 가버렸습니다.
다음에 다가온 건 코끼리였습니다.
“뿌우우우! 내가 고쳐줄게. 원래 어떤 모양이었는지 잘 떠올려 봐봐.”
하지만 테일러는 떠올리고 싶지 않았고 코끼리도 꼬리를 엉덩이 위로 말아 올리며 가버렸습니다.
하나, 둘 찾아 온 친구들, 히히, 그냥 웃어버리라는 하이에나
“후웅! 그냥 아무 일 없던 것처럼 숨어버리라는 타조
커엉 커엉 싹싹 치워버리라는 캥거루 쉬이이이~,
우리 같이 다른 애들 거 무너뜨리자는 뱀
하지만 테일러는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 누구와도. 테일러는 혼자 남았습니다.
너무 조용해서 토끼가 다가오는 줄도 모르는 테일러.
토끼는 조금씩, 조금씩 다가왔습니다.
테일러가 따뜻한 체온을 느낄 때까지.
그리고 둘은 말없이 앉아 있었습니다.
나랑 같이 있어줄래? 토끼는 테일러의 이야기를 가만히 들어주었습니다.
테일러가 기억해 내고 웃어주는 모든 것들을.
닭과 곰처럼 소리 지르는 것도 타조처럼 숨고,
캥거루처럼 상자에 다 넣어버리고
뱀처럼 누군가에게 복수할 계획도 가만히 들어주었습니다.
그러는 내내 토끼는 테일러 곁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느껴지시나요?
두 귀 세우고 테일러의 등에 가만히 기대며 테일러의 소리를 경청해 주는 토끼의 체온을.
가만히 눈 감고 들어주는 토끼의 다정한 모습을.
나, 다시 만들어볼까? 다시 해 볼래.
지금 당장 테일러의 밝은 목소리가.
힘찬 몸짓이 그림책 가득 펼쳐집니다.
‘정말 멋지겠지 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