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서강창마을방송국 #마을방송국 #그림책 #수박이 먹고 싶으면
♧그림책
수박이 먹고 싶으면
김장성 글/유리 그림/이야기꽃
수박이 먹고 싶으면
수박만 한 구덩이 파고
삭은 퇴비와 참한 흙 켜켜이 채워 넣어야 한다.
거기 까만 수박씨 서너 개 고이 누이고 흙 이불 살살 덮어 주어야 한다.
그러면서 잘 자라라, 잘 자라라 조용조용 말해주면 더욱더 좋다.
수박이 먹고 싶으면 옴질대는 싹눈이 마르지 않게 날마다 촉촉이 물 뿌려 주되,
수박 싹 제가 절로 난 줄 알도록 무심한 듯 모른척해 주어야 한다.
그러다가 슬며시 둘러볼 적에 떡잎이 온 힘 다해 솟아나 있거든
대견해라 기특해라 활짝 웃으며 아이처럼 기뻐할 줄도 알아야 한다.
수박이 먹고 싶으면 대견한 수박 싹 서너 개 중에 아깝더라도 아무리 아깝더라도
두세 개는 솎아 내어야 한다.
그리고 솎아 낸 수박 싹이 슬프지 않게 남은 싹이 그 몫까지 자랄 수 있도록
북 돋워 주고 물 뿌려 주고 줄기를 쭉쭉 뻗을 수 있게 묶은 볏짚 고루 깔아주어야 한다.
수박이 먹고 싶으면 줄기가 힘을 모을 수 있게 마디마다 돋는 곁순 똑똑 따 주고
벌 나비 수박 꽃에 날아들도록 뽑아내고
돌아보면 또 돋는 잡풀 훓어내고 돌아보면 또 생겨난 진딧물 일일이 손으로 뽑고 훓으며
짠 땀이 뚝뚝 떨어지는 고단한 노동을 마다지 않아야 한다.
수박이 먹고 싶으면 수박이 익기를 기다려야 한다.
수박이 먹고 싶으면 수박이 익기를 기다리는 동안
고라니며 멧돼지며 고라니 같고 멧돼지 같은 꼬맹이들이
설익은 수박 몇 덩이 축내더라도 서운해하거나 골내지 아니하면서
줄무늬 또렷해질 때까지는 기다려야 하며
덩굴손 마를 때까지는 기다려야 하고
꽃자리 우묵해질 때까지는 기다려야 하고
중지 마디로 통통 두드려 맑은소리 날 때까지는 기다려야 한다.
수박이 먹고 싶으면,
정말 수박이 먹고 싶으면
그렇게 심고 가꾸고 기다리고 기다리다가 영글대로 영근 수박이 이윽고 날 잡아 잡수! 하고
푸른 몸뚱이 반짝거릴 때 성큼성큼 밭에 들어가 그놈을 똑 따서는 “어이! 이리들 오소!”
수박 먹고 싶은 사람이면 그 누구든 커다란 손짓으로 불러야 한다.
엊그제 다툰 사이도, 지나가는 길손도 이리 와요! 반가이 불러 정답게, 정답게 둘러앉아야 한다.
그래야 수박은, 잘 익은 수박은 칼도 닿기 전에 쩍! 제 몸을 열어 아낌없이 나누어 주는 것이다.
한 시절을 고스란히 돌려주는 것이다.